2023 SCON 후기 - 모두가 즐거운 대회를 만드는 방법

서론

끝이 보이지 않던 2023 SCON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대회 출제&검수는 50번도 넘게 해봤지만, 대회 운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시행착오가 많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권한이 많은 만큼 제가 원하는 요소들을 자유롭게 대회에 넣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대회는 다른 것은 몰라도 1) 초보자들도 즐겁게 참가할 수 있는 대회, 그리고 2) 모두가 편안한 대회를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프로그래밍 대회에 좋은 추억을 갖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원활한 대회 진행을 위해 고려했던 것 위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야 우리 대회 개최하자!

관심이 없는 분들은 다음 파트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PC로 보는 경우 오른쪽 사이드바에서 문단을 건너뛸 수 있습니다.

SCCC의 활동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19로 인해 멈춰있었습니다. 2022년에 SCCC 회장을 맡게 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소모임의 상태를 2019년 이전으로 돌려놓는 것이었습니다. 2019년까지는 대회도 열고, 오프라인 스터디도 하고, 홈커밍이랑 MT도 가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을 부활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은 소모임 운영진이 1명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대부분의 일을 저 혼자 처리했고, 학교/소모임 후원사와 대화하는 것과 온라인 스터디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회는 2023년에 부회장을 하면서 회장과 함께 여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홈커밍이랑 MT는 어느새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올해 회장은 대회 운영 경험이 많은 chansol이 잡았기 때문에 대회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chansol이 입학하자마자 회장으로 점 찍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ICPC가 끝나자마자 회장을 넘겨주기 전인 11월부터 슬슬 대회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저, chansol, kyo20111, edenooo 모두 BOJ 연말 대회와 신년 대회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본격적인 작업은 Hello, BOJ 2023!이 끝난 이후인 1월 중순부터 시작했습니다.

목표

사람뿐만 아니라 공부 분야에서도 첫인상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출제 오류가 가득했던 2018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예선이 첫 알고리즘 대회였던 학생이 이후로 몇 년간 PS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저만 하더라도 첫 CTF 대회였던 2023 핵테온의 운영을 보면서 크게 실망했었습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알고리즘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이번 대회에 즐겁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UCPCBOJ 연말 대회처럼 고인물들이 많이 참가하는 대회를 준비할 때는 의도적으로 참가자들에게 심리전을 걸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O(N \log N)$ 시간에 풀 수 있는 그리디 문제의 입력 제한을 $N \leq 400$으로 준다던가, 의도적으로 예제를 약하게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SCON은 최상위권 몇 팀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참가자가 초보자이기 때문에 예제를 강하게 만들고 예제 설명을 친절하게 작성하는 등 최대한 문제 풀이를 찾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했습니다.

대회 문제를 깔끔하게 만든 이후에도 고려할 것은 남아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계절학교 모의고사와 국가대표 선발고사에 참여했을 때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볶음밥에 제가 먹지 못하는 식재료가 들어가서 아예 먹지 못하고, 간식으로 준 샌드위치도 견과류가 들어가 있을까 봐 조교님들께 물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운영진 입장에서는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어떤 참가자에게는 굉장히 큰 불편함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편안한 대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참가자를 배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다 보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진 않을까 봐 대회를 진행하는 내내 불안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대회 끝나고 다들 즐거웠다고 말씀해 주셔서 뿌듯했습니다.

참가자를 위한 목표 말고도 다른 목표도 있었습니다. 대회를 직접 운영해 보니, 과거 대회 자료를 참고하며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운영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자료들을 문제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공개해 다른 대회를 개최하시는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글 하단에서 공개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해야 하는 것

특별상

학교 내에서 유일하게 알고리즘 문제 해결을 다루는 단체인 SCCC가 컴퓨터학부 소모임이다 보니, 컴퓨터학부/소프트웨어학부를 제외한 다른 학부에는 PS를 처음 접해보는 학생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문제는 IT대학의 다른 교수님들도 인지하고 계신 문제이며, 소모임 담당 교수님께 대회 기획서를 제출했을 때 교수님께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내용 중 하나입니다.

숭실대학교 IT대학는 컴퓨터학부, 소프트웨어학부, 글로벌미디어학부, 미디어경영학과, AI융합학부, 전자정보공학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에 있는 4개의 학부는 주로 정보과학관을 사용하고, 다른 2개의학부는 주로 형남공학관을 사용합니다. IT대학 내의 모든 학부가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학생회관, 정보과학관, 형남공학관에 여러 장의 포스터를 부착하고, 학부마다 최소 한 팀 이상 참가할 수 있도록 추가 TO를 마련했습니다.

수상을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대회에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PS를 처음 접해보는 분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학부별 1등 특별상과 1학년 1등 특별상을 추가했으며, 상품을 받지 못한 분들께도 다양한 간식과 나름(?) 대회 기념품인 명찰도 함께 제공했습니다.

대회 후원사인 현대모비스에서 상품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 상품들은 성적과 관계 없이 특별한 기준으로 추첨하는 특별상 상품으로 증정했습니다. 특별상은 후원사 홍보 문제인 B번 문제를 꼭 읽어달라는 의미에서 A번 문제를 가장 늦게 푼 팀, 그리고 B번 문제에 시간을 많이 쏟아서 홍보의 효과를 높여준 것이 고맙다는 의미에서 B번 문제를 가장 많이 시도해서 푼 팀에게 수여했습니다. 후원사 관련 명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은 하위권 팀에게도 상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음식물 알레르기

저는 고등학생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급식으로 밥만 받아서 먹어야 할 정도로 못 먹는 음식이 많습니다. 음식을 주는 대회마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알려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운영하는 대회는 이러한 불편함이 없길 바랐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제공하는 문제지에 모든 간식의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혼입 가능한 물질을 함께 기재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또한, 당류나 콜레스테롤 수치 등 영양 성분을 신경 써야 하는 참가자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영양 성분표와 원재료가 궁금한 참가자는 운영진에게 문의하도록 안내했습니다.
문제지 6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영진 인건비 지급 방식

돈을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고, 사람마다 받아도 되는 방법과 받으면 안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가장학금과 같은 소득 분위에 따른 장학금을 받는 사람들은 소득이 안 잡히는 장학금으로 돈을 받는 것이 좋고, 다른 장학금을 지원받는 사람 중에는 오히려 장학금을 받는 것이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전액 장학금을 받는 사람들은 등록금 액수를 초과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세금을 떼고 인건비를 지급하는 방법으로도 사업소득과 기타소득이 있는데, 특정 소득 분류로는 돈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건비는 학교에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스태프를 모집할 때 소득의 종류를 미리 알려주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인건비를 받았을 때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지급 방식을 명시하고 스태프를 모집했습니다. 다음 대회를 위해 기록해 놓자면, 학교 재학생은 등록금 초과 수혜가 가능한 장학금, 외부 검수진은 8.8%를 원천징수 하는 기타소득으로 지급했습니다.

색약/색맹

국내에서 남성의 5~6%, 여성의 0.4% 정도가 색각이상 증상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 일러스트에 색깔이 들어가는 경우에는 색각이상자를 배려해서 제작해야 합니다. Coblis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색각이상자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미리 확인하고, 색깔 외에도 모양으로 차이를 주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배려를 할 수 있었습니다. SCON과 비슷한 시기에 준비했던 다른 대회는 이런 방식으로 해결했고, SCON은 그냥 모든 일러스트를 흑백으로 통일하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초보자 배려

다행히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교내 대회인 천하제일 코딩대회를 2번 운영하면서(#1, #2) 초보자들이 많이 불편해하는 점들을 미리 파악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편의 사항을 제공했습니다.

  • 문제 난이도 커브
    대회장에서 3시간 동안 한 문제만 풀고 집에 가는 건 전혀 즐겁지 않은 일입니다. 잘하는 팀들을 변별한 문제는 최소한으로 출제하고, 쉬운 난이도에 매우 많은 문제 수를 할당했습니다. 출제진이 예상한 난이도 기준으로 브론즈 3문제, 실버 3문제, 골드 2문제, 플래티넘 2문제를 출제했습니다. 처음에는 ICPC의 경향에 따라 C++과 Java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보장하려고 했지만 결국 Python까지 모두 허용한 것도 약간의 배려… 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수식 이해
    “$i \ne j$ 이면 $A_i \ne A_j$ 이다.” 와 같은 수식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뒤에 “즉, $A$의 모든 원소는 서로 다르다.” 와 같은 문장을 덧붙이는 것으로 엄밀함과 친절함을 모두 챙겼습니다.
  • 코드 작성
    입출력 양이 많아 빠른 입출력(Fast I/O)가 필요한 문제가 여러 개 있어서 이에 대한 안내와 템플릿 코드를 제공했습니다. 선린 대회에서는 64비트 정수형이 필요한 모든 문제에 힌트를 남겨놓았지만, SCON은 64비트 정수형이 필요하다는 정보가 문제 풀이와 연관된 경우가 있어서 문제에 적어주지 않았습니다.
  • 문제 독해
    중고등학생 때를 생각해 보면 예제를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눈에 예제를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은 최소한 한 개의 예제에 자세한 설명을 달아주었습니다.
  • 채점 진행도
    UCPC와 같은 큰 대회는 채점 진행도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엄격한 채점을 위해서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채점 진행도를 보여주지 않으면 대회 참가 경험이 적은 참가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보여주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사진 촬영

대회 진행 도중에 사진 촬영을 하고 온라인에 공개할 예정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에게 미리 동의받았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팀마다 동의 여부를 조사해서 동의한 팀들만 사진을 남겨주는 것이지만, 학교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참가 신청 양식을 제가 수정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동의만 받았습니다. 다음 대회에서는 구글 폼을 함께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

문제 일러스트를 제작할 때 글꼴이나 클립아트의 저작권을 고려하는 것이 귀찮아서 모든 그림을 tikz로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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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함과 좋은 경험을 주는 것 사이에서 줄 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64비트 정수형 사용 안내는 문제 풀이에 간접적인 힌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알려주지 않았고, 채점 진행도는 대회의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대회에서 개선할 점

이 밖에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거나 뒤늦게 떠올라서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요소들도 있었습니다. 또는 참가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가지는 않지만 수정하면 좋았을 것 같은 점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다음 대회에서는 꼭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휠체어 이동

학교에 계단이 정말 많습니다. 그래도 다들 학교 재학생이니 정보과학관까지 알아서 잘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IT대학 소속 학부 중 정보과학관을 사용하지 않는 학부도 있었습니다. 원래라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만 이용해 대회장까지 오는 방법도 같이 안내했어야 했는데, 학교 재학생이라는 것을 믿고 너무 안일하게 있었습니다. 이 점은 다음 대회에서 꼭 보완하려고 합니다.

풍선 공포증 (Balloonphobia)

프로그래밍 대회는 문제를 맞힐 때마다 풍선을 달아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하지만 풍선을 무서워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풍선을 참가자와 먼 곳에 배치하거나 높이 배치하는 등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은 예전에 다른 대회를 운영하면서 들은 적이 있지만, 정작 이 대회를 운영할 때는 대회 당일에 생각나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2인 팀 관련

2019년에는 2인 팀과 3인 팀을 모두 허용했지만, 이번 대회는 3인 팀만 허용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3명을 모으지 못해서 대회 참가 신청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을 보면 2인 팀도 허용하는 것도 고려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가 신청 기간

참가 신청 마감을 일요일로 설정했었는데, 이러면 안 됐습니다. 참가 신청은 마지막 날에 많이 몰리고 당연히 문의도 마지막 날에 많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저는 참가 신청이 이뤄지는 학교 플랫폼을 모르기 때문에 문의가 와도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대회에서는 꼭 참가 신청 마감 기한을 평일 학교 직원 퇴근 전으로 잡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참가자들에게 편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것들을 설문으로 조사하는 것일 테지만, 재학생인 제가 이런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운영진들끼리만 머리를 굴려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다 보니 운영진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스태프를 더 뽑아서 함께 일하는 방법도 생각을 해봤지만, 개인 정보를 다루는 작업이 많아서 한정된 인원들끼리만 작업했습니다. 다음 대회에서는 개인 정보를 다루지 않는 작업을 최대한 분리해서 스태프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대회를 바닥부터 운영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많이 미숙했습니다.

최근에 IOI 2022 HTC Report를 읽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5가지 색깔 카드(간식, 연습장, 화장실, 물, 컴퓨터 교체 요구)가 좋아 보이던데 다음 대회에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출제/검수

대회를 열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하고,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출제자와 검수자가 필요합니다. 다른 대회를 보면 검수진을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대회도 많이 있던데, 사실은 출제진을 구성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검수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출제진과 검수진을 모집한 과정을 자세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출제진을 구하는 것은 쉬웠습니다. 처음에는 8~12문제 정도의 대회를 기획하고 있었고, 이 정도의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3~5명 정도의 출제자가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숭실대학교 재학생 중 ICPC 수상자가 4명 있어서 4명을 모두 출제진으로 끌어들이고, 대회 참가 자격를 ICPC Asia Seoul Regional Contest 수상 경험이 없는 자로 결정했습니다. 과거 대회를 보면 본선 진출자도 참가를 막았던 적도 있는 것 같은데, 2023 SCON은 코로나19 이후로 4년 만에 열리는 교내 대회이기 때문에 참가 자격을 널널하게 정했습니다.

검수진을 정할 때는 매번 정말 많이 고민합니다. 이번 대회는 검수비 예산을 3명분만 잡아놓았고, 심지어 IT대학 측에서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요구해서 더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대회 난이도와 참가자, 그리고 문제 스타일에 따라 검수진을 다르게 구성합니다. 상수 커팅을 고려해서 세팅한 문제가 있으면 상수 커팅을 잘하는 검수자를 섭외하고, 문제를 많이 푼 사람이 참여하는 대회는 기존에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BOJ 랭커를 섭외합니다. 올솔브 방지 문제를 내거나 계산 기하 문제 등 다른 검수자들이 검수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가 있으면 그 한 문제를 위한 검수자를 섭외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번 대회는 쉬운 대회를 지향하고 상수 커팅을 고려하지 않아도 돼서 특정 역할을 요구하는 검수진을 모집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번 대회의 검수진으로는 깔끔한 문제 지문을 만들기 위해 지문 위주로 검수할 ryute, 모든 문제를 풀어보면서 수정해야 할 점을 알려줄 junseo, 마지막으로 문제 지문과 풀이, 그리고 $\LaTeX$ 조판 등 대회 운영 전반에 대해 조언을 해줄 cologne를 섭외했습니다. 세 분 모두 제가 기대한 것보다 더 열심히 꼼꼼하게 문제를 검수해 주셨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제가 출제 총괄을 담당하긴 했지만, 출제자 4명 모두 PS 실력과 대회 운영 경험 모두 고일 대로 고인 사람들이라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고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진짜 잘했기도 하고요. 사용되는 알고리즘이 많이 겹치면 문제 몇 개를 버리고 새로 만들려고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지문과 풀이 슬라이드는 Overleaf, 채점 데이터와 솔루션 코드는 Codeforces Polygon을 이용해 관리했습니다. 동일한 정보를 두 곳 이상에서 관리하면 변경 사항을 반영하고 추적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문과 데이터가 모두 완성된 다음에 대회 3일 전에 BOJ Stack으로 옮겼습니다.

Overleaf는 유료 플랜을 사용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공유를 1명까지밖에 할 수 없고, 저는 무료 플랜을 사용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공유할 때 링크를 이용해서 공유해야 했습니다. 출제진과 운영진 모두 서로 아는 사람이고 같이 대회도 여러 번 운영해 봤기 때문에 안심하고 링크 공유를 했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진 않을까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UCPC 2020에서는 self-hosted Overleaf에서 작업했었는데, 다음에도 대회를 운영하게 된다면 이것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Overleaf에서 $\LaTeX$로 작성한 문제를 BOJ Stack으로 옮기는 것도 매우 귀찮은 작업인데, solved.ac의 개발자이신 shiftpsh님께서 BOJ Stack 디스크립션 툴을 개발해 주셔서 잘 사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풀이 슬라이드는 shiftpsh님께서 제작하신 UCPC 2020 solutions theme, 문제지는 Codeforces Polygon에서 기본으로 제공해 주는 GassaFM/olymp.sty을 개조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노동

저는 chansol과 함께 대회 운영에서의 모든 의사 결정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예산안 작성, 문제 출제/검수 총괄, 스태프 관리, 3문제 출제, 모든 문제의 모든 언어(C++/Java/Python) 풀이 코드 작성 및 검수, 문제지 제작, 풀이 슬라이드 제작, 문제 일러스트 제작을 담당했습니다. 이 밖에도 명찰 제작, 문제지 봉인과 같은 단순 반복 노동도 하고, 대회 당일에는 풍선 배달, SCCC 홍보, 스코어보드 오픈까지 진행했습니다.

SCON과 비슷한 시기에 다른 대회도 함께 준비했었는데, 대회가 다가올수록 두 대회 모두 신경 쓸 것들이 정말 많아져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머리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심지어 5/8에는 코로나 확진까지 되어서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격리 기간이 일주일이나 되는 덕분에 이틀 정도 아팠던 것을 제외하면 학교에 안 가고 하루 종일 대회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하게 쓰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더 작성하지는 않겠습니다.

SCCC에 대한 이야기

코로나19 이전에는 SCCC에서 매년 대회를 개최하고, 나름대로 출제 프로세스의 인수인계도 잘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소모임의 모든 활동이 멈추게 되면서 모든 것이 끊어졌습니다. 다행히 지난 몇 년 동안 특기자 전형 덕분에 정신 나간 고인물 몇 명이 들어와서 올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당장 내년부터는 다들 졸업하거나 바빠질 것 같아서 대회 개최를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새로운 고인물이 매년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고요.

내년까지 제가 많은 부분을 담당해서 운영하고 그다음에 졸업해 버리면 인수인계 같은 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SCCC에서 문제 출제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고, 모의대회를 개최해 보면서 다음 대회를 위한 빌드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소모임에 열심히 PS를 하는 후배들이 여러 명 있기 때문에 인수인계만 잘 이루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 좋은 대회를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동아리의 운영진들과 이야기해 보니, 후배들을 가르쳐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허탈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느껴서 많이 고민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동아리 들어와서 자신이 PS와 맞지 않고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잘하는 후배들을 몇 명 발견하면 더 좋고요.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하루에 한 문제도 안 푸는 것을 보면 어이없고, 잘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질문은 절대 안 하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지긴 하지만, 그래도 문제 열심히 풀고 혼자 다른 것들을 더 찾아서 공부하는 학생 몇 명 보는 맛에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PS가 적성에 맞지 않는데 꼬박꼬박 스터디 참석해서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학생들 나름대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학기의 가장 큰 행사인 SCON이 끝났으니 조금 쉬고 다시 힘내서 여름방학 스터디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대회 운영 자료 공개

https://github.com/ssu-sccc/2023sco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갖고 있는 파일인 풀이 슬라이드 프로젝트, 문제지 프로젝트, 현장 스태프 매뉴얼을 올려놓았고, 추후 다른 파일이 더 추가될 수 있습니다. 2023 SCON에서 사용한 방식이 꼭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대회를 운영하시는 분들께서 초기 기획을 세울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회 열어보겠다고 객기부리던 것과 3학년 때 UCPC Call for Tasks에 문제 제출하고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정말 대회 운영과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문제 출제, 검수, 후원사 연락, 운영, 서버 관리까지 해봤고, 안 해본 것은 장소 대관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4년 전, 수능을 100일 앞둔 시점에 제 첫 대회 개최를 도와주고 지금도 문제 검수가 필요할 때마다 흔쾌히 달려와 주는 Ryute님, UCPC, SPC, SUAPC 등 다양한 대회의 운영 경력을 쌓을 기회를 주신 shiftpsh님을 비롯한 서강대 분들, BOJ 연말 대회마다 저를 불러주신 leejseo님, 그리고 최고의 선배 wookje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숭고한 개최 후기 복붙입니다. 죄송ㅎㅎ

학교와의 소통을 혼자서 담당해 주고 제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관리해 준 chansol, 좋은 문제를 제공해 준 멋진 선배 kyo20111, edenooo, 문제뿐만 아니라 대회 운영 전반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신 검수진 cologne, junseo, ryute가 없었으면 대회 개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회 당일 이른 시간부터 나와서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과 스태프 모집 글을 홍보해 주신 분들께도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다음에는 더 멋진 대회로 돌아오겠습니다.

끝!